내 첫 번째 아이이자, 첫 번째 반려묘인 우미를 기억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우미는 2020년 12월 16일 아침 6시 30분경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전날 점심까지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사냥놀이도 하고 점심도 잘 먹고 잠이 들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저녁시간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자 그때부터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시니어 고양이로 평소처럼 오래 자나보다 라고 생각한 내가 안일했다.
아이를 깨우기 위해서 몇 번 쓰다듬었는데 그때 한번 하악질을 했다.
그리고 어떻게 나한테 하악질을 해!라고 혼을 냈다.
평소 하악질을 하지 않는 아이인데 이상하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어야 했는데 내 생각이 안일했다.
그러고 나서 혼자 걸어서 안으로 들어가길래 쉬고 싶은가 보다 라고 생각한 내가 안일했다.
아침식사를 토해내기는 했으나 새로 까준 캔을 맛있게 먹고 사냥놀이도 하고 점심도 먹었고,
설사 증상도 없었고 아침에 화장실도 이용했고 뭐든 것이 평범했다고 생각한 내가 안일했다.
어디서 잘못된 것 일까?
작은방에서 모모 침대에서 자는 것을 확인한 나는 나중에 억지로라도 밥을 좀 먹여야지 라고 생각하고 샤워를 간 내가 안일했다.
그 사이 우리 집에서 가장 구석진 리터 로봇 아래에서 구토를 했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아이가 이상하다.
밥도 먹었고, 설사 증상도 없었고, 사냥놀이도 하고 괜찮겠지.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가야지 라고 생각한 내가 안일했다.
이후 아이는 점점 늘어졌고, 늘 잠을 자던 내 베개 위에 올려두었는데 굴러 떨어지더니 스스로 몸을 뒤집지 못했다.
이 일이 2번 반복되었고 베개를 평평한 담요로 바꾸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여전히 괜찮겠지라고 생각한 내가 안일했다.
평평한 담요를 준비하는 동안 우미를 들어서 내 무릎에 올려두었다.
아이가 움직이지 않는다.
많이 아픈가 보다 라고 생각만 한 내가 안일했다.
새벽 2시,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갑자기 아이가 일어섰다. 침대 밑으로 내려가고 싶은 듯했다.
그런데 침대 밑으로 점프를 하긴커녕 스탠딩 라이트 쪽으로 향했다.
이상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있으니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 내가 안일했다.
짝꿍이 ER에 가자고 했다.
그때서야 우리는 움직였다.
평소라면 케이지에 들어가기 싫어서 난리를 치는 아이가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다.
코비드 때문에 병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차 안에서 기다리면서
‘춥다.. 어디 문 연 가게 없나.. 맥도날드에 따뜻한 거 뭐 파려나’ 생각했다.
이랬던 나 자신에게 정말 화가 난다.
간호사가 나와서 간단한 설명을 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면서
“Promise. I will good take care of her”
걱정은 되었지만 그 한마디가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나름 기대도 되었다. 건강한 아이가 그리고 어떤 균이 아이의 구토를 유발하는지 모르니 모두 죽이겠다고 했던 말이
‘균을 죽이면 구토가 줄겠구나! 만세’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집으로 와서 병원의 전화를 기다리면서 발 뻗고 잠을 잤다.
이랬던 나 자신에게 정말 화가 난다.
아침 7시 40분 드디어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잠결에 전화를 받았고 아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원인은 당뇨로 예상 중이다.
혈압이 굉장히 높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미는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의사도 당뇨일 수도 있다. 정도로 진단을 내렸다.
서둘러서 병원으로 향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꿈일 거야 라고 생각했다.
이 와중에 다른 아이는 언제 입양해야 하나 이참에 늘 입양하고 싶었던 강아지를 입양해야 하나.
아 더 이상 우미랑 모모랑 싸우는 일 없어서 내 일이 줄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어야 할까? 평소처럼 행동해야 할까? 우는 척이라고 해야 할까?
이랬던 나 자신에게 정말 화가 난다.
병실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자 이런 생각이 사라졌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다.
아직까지도 따뜻한 우미를 붙잡고 몇 번이고 빌었다.
미안해. 너무 미안해 엄마가 너무 미안해.
엄마가 처음이라서, 엄마가 하나부터 열까지 서툴러서 미안해.
그런데도 우미는 다 받아줘서 너무 미안해.
엄마한테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라.
엄마가 이제 한번 해봐서 다시 하면 잘할 수 있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하루 종일 비난할 누군가를 찾아다녔다.
첫 번째는 나였다.
내가 며칠 전에 실수로 키튼 캔을 준 것이 잘못되었을까?
몇 달 전에 산 리터 로봇이 스트레스였을까?
어제 아침에 먹고 바로 구토한 새로 산 인스팅스가 잘못되었을까?
제한 급식을 한 탓 일까?
둘째를 데려와서 스트레스가 많았을까?
내가 너무 많이 먹였나?
두 번째는 ER 병원으로 향했다.
정말 제대로 내 아이를 돌본 게 맞아?
새벽이라서 아이가 힘들어할 때 쉬고 있었던 거 아니야?
세 번째는 평소에 가던 병원으로 향했다.
만약 정말 당뇨가 원인이라면 왜 매년 하던 검진에서 발견하지 못했을까?
아이와 인사를 하고 처음에는 그래도 따뜻했던 아이가 차갑게 굳어가는 것을 보고 집으로 왔다.
차갑게 굳어 간다라는 말을 책에서만 읽었다. 처음으로 그 느낌을 내 손으로 느꼈다.
집에 도착하자 모모가 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네 번째로 나의 분노는 모모에게로 향했다.
너만 내가 데려오지 않았어도 우미는 지금 살아있었을 거야.
내 다리 밑을 어슬렁 거리며 야용 거리는 아이를 무시했다. 발로 살짝 밀어내기도 했다.
화가 났다.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언니를 너무 괴롭혀서 그래. 네가 어제 언니 때려서 그래.
온 세상이 멍했다.
그래도 짝꿍이 계속 뭔가 하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바닥에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번갈아가면서 울었다. 서로 위로를 했다.
그렇게 4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울 기운도 없었다.
죽음을 내손으로 맞이한 것이 처음이었다.
어린 시절 이런 경험이 없어서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 분명 기회는 있었다. 다만 우리 부모님을 그것으로부터 나를 배제시켰다.
다섯 번째로 부모님에게 분노가 향했다.
왜 그들은 나에게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않았지?
내가 어렸을 때 죽음에 대한 것을 조금이라도 가르쳐줬으면 지금 나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아무것도 못하고 바닥에 앉아 있는 지금의 나보다는 뭔가 다르지 않았을까?
엄마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마지막으로는 모든 것에 화가 났다.
이렇게 되기 하루 전날 읽은 해빙이라는 책을 오빠에게 추천하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우미가 짝꿍 무릎에 있어서 함께 사진이 찍혔다.
해빙을 하면 돈과 행운을 불러온다며. 해빙을 실천하려고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겨난 거야.
사기꾼들……
집에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집에 모든 곳이 우미가 있었다. 아니 아직도 어딘가 있는 거 같다.
오후 4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우리는 일단 나가서 음식을 사 오자고 했다.
짝꿍이도 운전에 집중하면 조금 distract 될 것 같다고 했다.
UTC까지 가서 딘타이펑과 우쉬란 밀크티를 사 왔다.
밀크티를 사서 나오자마자 떨어트려서 스텝들이 치우게 만들었지만
정말 좋은 스텝들이었다. 새 음료도 만들어 주었다.
막상 밖에서는 농담도 하고 몇 번 웃기도 했다.
그런데 집에 다가올수록 다시 울컥했다.
어떻게 이렇게 웃을 수 있는지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집에 들어가면 우미가 없겠구나.
우리를 웰컴 하는 건 우미뿐이었는데 이제 아무도 없겠구나.
차가 차고에 들어오자마자 차에서 내기리도 전에 우리 둘은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역시나 우미가 없다.
우미가 자주 사용하던 캣 트리, 캣 침대도 두 개, 캣 볼도 두 개, 캣 트레이도 두 개
모든 것이 두 개인데 우미는 없다. 사용할 우미가 없다.
집에 음악을 틀었다. 시끄러운 걸로.
먹히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넘기고 그때부터 서로 생각했던걸 이야기했다.
그래도 조금은 웃을 수 있었다. 좋은 메모리를 이야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웃을 수 있는지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그러다가 짝꿍의 엄마와, 친구 스텔라가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미워해봐도 우미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간 아이 마음 편하게 보내주자.
모두가 힘들어했던 2020년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 참 많았다.
2019년 말에 첫 집을 사서 이사를 했고, 덕분에 2020년 코비드를 넓고 밝은 집에서 너무 답답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2020년 모두가 코비드에 힘들어할 때 우리는 여전히 일 하며 돈을 벌 수 있었고,
그 덕에 하우징 론 보험을 캔슬했다.
모모를 입양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다. 하지만 4개월 후 모모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어쩌면 우미는 뭐든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코비드가 없었다면 짝꿍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나는 밖으로 놀러 다녔을 것이다.
어쩌면 우미는 자신의 마지막을 일부러 코비드 타임으로 정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도록…
우미가 우리를 이 집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우미가 모모를 우리의 품으로 데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우미가 우리가 대출 보험금을 빨리 갚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떠났을지도 모른다.
우미가 우리가 자기 병간호에 너무 힘들지 말라고 그렇게 서둘러서 떠났는지도 모른다.
우미가 너무 힘들지 말라고 모모를 우리 가족으로 만들기 위해서 모모를 가르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미는 이제는 모든 것이 완벽해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미를 보내주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하루가 끝이난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하루가 참 기다란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내 아이를 떠나보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우미와 모모 사진으로 만든 2021년 달력이다.
다행히도 우미 사진을 많이 넣어두어서 기뻤다.
2021년도 우미를 만날 수 있다.
나는 혹시 우미가 찾아올 수도 모른다는 생각에 현관 불과 거실 불을 켜 두기로 했다.
우리가 자는 사이에 와서 먹을 수 있도록 여전히 음식도 두 개 준비해 두었다.
혹시라도 아침까지 거실에서 노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아침 로봇청소기 예약 설정을 꺼두었다.
내가 우미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당분간은 계속 이렇게 생활할 예정이다.
오늘 하루는 너무나도 긴 하루였다.
너무 많은 생각을 했고, 우미와 한 모든 일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특히 오늘. 2020년 12월 16일 일어난 모든 일과 생각 하나하나까지 기억하고 싶다.
우미를 기억하기 위해 이 다이어리를 쓴다.
우미야 우리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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